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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
미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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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단 경계선 남아있는 베를린
- 국회의사당엔 유대인 조형물
- 꾸준한 과거청산 예술작업 통해
- 세계 문화 중심지로 성장
- 2차 대전때 폐허된 도시 카셀
- 도쿠멘타 열어 현대미술 메카로
- 뮌헨, 미술관과 연구소 인접
- 부산 예술현장, 고민 있어야
통독 이후 독일의 예술계. 분단국가였던 독일의 문화예술이 변신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산업을 선언하여 품었던 희망의 싹이 트기도 전에 시들은 현재, 모든 것을 경제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21세기 민주주의 미술을 실현한 베를린, 2차대전 후 세계 미술 전시 메카로 우뚝 선 카셀, 패전 국가에서 예술 대국으로 전환하는 데 기여한 연구 중심의 뮌헨. 이런 도시들이 동참해 독일이 문화 대국으로 이름을 올렸다. 독일 도시들의 미술 현장을 뜯어보자. 그러면 한국의 지방자치단체 문화정책과 문화재단, 부산시립미술관, 광주와 부산비엔날레에 거는 기대가 커질 수밖에 없다.
■ 베를린-21세기형 미술 민주주의
나치 때 학살당한 유대인이 살았던 베를린 건물 앞에 새겨진 미술 작품. 샬로테 블로흐라는 유대인이 1940년 포로수용소로 끌려가 사망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독일 수도 베를린. 1991년 통일 독일의 수도로 결정된 후 24년이 지난 현재, 베를린은 문화예술로 꽃을 피웠다. 예술가라면 한 번쯤 도전하고 꿈을 실현하고 싶은 세계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한 이유를 찾아보자.
1244년 도시로 명명된 베를린. 2차대전 이후 1945년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으로 나뉘고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이 공동으로 관리해 대륙 봉쇄의 상징이 됐다. 우리에게 동백림사건으로 기억되는 베를린은 통일 독일의 수도로 거듭났고 21세기형 미술의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문화 수도로 등극했다. 냉전 시절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연설한 흔적과 더불어 분단을 상징하는 동서의 경계선이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나치 때 학살당한 유대인이 거주했던 건물 앞 도로에는 유대인 이름을 새긴 미술 작품이 박혀 있다. 정치 일번가 국회의사당은 1995년 크리스토와 클로드로가 건물을 포장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고 그 앞에는 유대인 학살을 잊지 말라는 상징적 조형물이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의사당 건물에 유리와 알루미늄으로 만든 돔이 첨가되면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1001개 세계 건축물로 등록되기까지 했다. 밖에서 내부공간을, 안에서 외부공간을 볼 수 있는 건축적 민주주의가 정치 일번가에서 현실화돼 세계가 인정한 건축물이 됐다.
여기에는 생존하는 미술가에게 꿈의 무대인 쿤스틀러 하우스 베타니엔도 한몫한다. 오랫동안 베타니엔 레지던시 관장을 설득한 끝에 부산문화재단과 협약을 했고, 마침내 부산에서 활동하는 작가에게 꿈을 실현할 기회를 선사했다. 이제는 푸념이나 서울과의 비교보다 전문가들이 힘을 합해 부산 미술 발전에 기여할 때가 도래하지 않았는가.
21세기형 미술의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베를린. 신사회미술협회(nGbK)는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다. 광복 70주년인 2015년 '야스쿠니 신사의 독일 참나무'란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고, '종전 70주년 그리고 동아시아와 유럽의 끝나지 않은 과거의 그림자'를 주제로 토론과 미술 전시가 개최됐다.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의 과거와 현재가 냉전 시대 분단의 상징이자 21세기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베를린에서 펼쳐진 것이다.
스가와라 류켄은 야스쿠니 합사 취소를 법적으로 소송 걸었던 일본 승려로서 일본인이 짊어진 역사적, 국가적 과제를 공식적으로 공표하기도 했다. '금지된 그림들-동아시아 민주주의 국가에서 검사와 검열'이라는 미술 전시는 고려대 강수돌 교수의 강연과 함께 우리에게 21세기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성찰할 기회도 마련했다. 동아시아 이웃 국가인 일본과 타이완 그리고 한국 작가 6명의 작품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미술에서, 창작의 자유 그리고 정치와 금지의 경계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들여다볼 기회도 제공했다. 신사회미술협회는 국경을 초월한 화두를 응집하여 과거 청산 문제와 더불어 21세기형 미술의 민주주의를 실천에 옮긴다. 게다가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시민에게 대여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베를린은 문화재로 관광객이 모여드는 파리나 로마와 달리 21세기 형 미술의 민주주의를 국제적으로 실천하는 예술 현장이다. 분단을 상징했던 베를린이 미술의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문화 도시로 성장한 배경은 개방 정책과 역사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기회균등 정책, 학벌이나 학연, 지연 등과 무관한 전문가들의 화합과 소통은 베를린을 21세기 민주주의 미술의 요람으로 이끌었다.
■ 현대 미술 전시 메카-카셀
2차대전 때 폐허가 된 도시 카셀이 현대 미술 전시의 중심지로 변신했다. 누구도 이런 변신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현대 미술의 중요성을 인식한 시민들의 동조가 든든한 반석이 되었다.
부산과 달리 아트 페어가 없는 카셀은 5년 마다 100일간 개최되는 도쿠멘타로 세계 미술인들의 시선을 끈다. 도쿠멘타의 성공 비결로 전문가 양성과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 효율적인 인력 활용을 꼽을 수 있다. 예술과 정치를 분리하고 1972년부터 예술 감독을 선정하면서 전시 관련 전문직종도 속속 생겨났다. 2012년 부산비엔날레 총감독이었던 로져 브뤼겔과 7회 광주비엔날레의 총감독이었던 오쿠이 엔비조도 카셀 도쿠멘타 예술 감독이었다.
카셀 도쿠멘타는 이벤트 행사인 전시뿐만 아니라 20세기와 21세기 미술에 관한 방대한 자료와 함께 도서관과 아카이브도 운영한다.
올여름에 개최된 '도쿠멘타 1997~2017: 확장된 사유공동체' 심포지엄을 들여다보자. 참가자들의 열린 의식과 철저한 비판의식에 놀랍기까지 하다. 환갑을 맞은 도쿠멘타는 심포지엄을 통해 이전의 예술 감독과 예술 전문가들이 함께 할 자리를 마련했다. 이는 21세기 현대 미술에 관한 학술과 토론의 장으로도 소임을 다한다. 이를 통해 '생각의 특수한 형태, 가치와 세계상을 사회로 환원하자'는 화두와 실천에서의 문제의식에 이론적인 틀이 마련되었다. 지난 도쿠멘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에 대한 비판의식도 공론화됐다.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주제이자 비판의식이다. 이쯤 되면 내용으로 꽉 찬 환갑잔치가 아닌가. 카셀 도쿠멘타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화두를 제공한다. 지난해 부산비엔날레가 문제를 안고 끝을 맺었다는 사실, 전시문화의 가치가 시민들에게도 널리 퍼져야 한다는 강령 등. 여기에 학술과 전시가 공생한 도쿠멘타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카셀을 현대 미술의 메카로 부상시킨 이유도 포함하자. 전문가의 부재가 아니라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이 부산에는 전무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말이다.
■ 미술 연구 도시-뮌헨
남부 도시 뮌헨은 통일 독일에 미술에 관한 연구와 미술관을 첨가해 문화 국가의 위상을 공고히 한다. 파리의 루브르보다 전시 면적이 더 큰 세 개의 피나코테크(미술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과 지하철역을 개조한 현대 미술전시관,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립 중앙 미술사학 연구소가 인접해 있다.
특히 세계 4대 연구소 중 하나인 중앙 미술사학 연구소가 있는 건물은 나치 때 나치당이 사용했던 곳이다. 150만 권에 달하는 미술 전문도서와 전 세계에서 발행되는 1100종의 미술 전문잡지를 보유한 이 연구소는 1945년 7월 나치 시대에 독일과 해외에서 도난당한 미술품을 법적 소유주에게 돌려준 것으로 유명하다.
중앙 미술사학 연구소는 부산에서 활동하는 미술 전문가에게 진지한 화두를 제공한다. 서울에도 없기 때문에 부산에도 필요 없다는 논리가 아니라, 그래서 부산 미술사를 연구하여 세대 간 이어달리기, 평론과 학술을 기반으로 항구 도시가 예술로 거듭나야 한다는 화두도 가능해진다.
정치와 현대 미술의 분리를 통한 화합과 소통, 미술의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방법, 연구와 학술로 국가의 위상을 고취하기. 어떻게 가능할까? 해답은 부산의 예술현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