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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현
의과대학 의학과
해부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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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역의 개념, 법칙, 사실, 이론 등을 다른 영역의 것들로 대치하려는 사고의 형태를 환원주의라 한다. 이는 과학 영역에서 흔히 나타난다.
1908년 노벨상 수상자 러더포드는 “과학이란 물리학이 아니면 우표수집이다”는 발언을 하였다. 과학은 물리학 원리에 기반해 유도되며 나머지 과학은 우표수집처럼 사실을 모으는데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물리현상으로 모든 자연과학적 현상을 설명한다는 극단적인 환원주의 태도를 그가 보여 준 것이다.
관찰이 불가능한 이론적 개념이나 법칙을 직접적으로 관찰이 가능한 명제로 바꾸어 놓거나, 심리 정신적 현상을 자연적 현상으로 설명하는 태도도 환원주의 경향이라 볼 수 있다.심지어 어떤 철학자들은 소립자부터 단계적으로 연구해 나가면 물리학부터 사회학까지 통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가설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환원주의는 “부분의 고유한 성질로부터 전체의 성질을 추론하려는 시도”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의학에서도 환원주의적 경향이 지배한 역사는 오래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화학과 물리학이 뚜렷한 성과를 거둔 한 두 세기 지나서 의학에서 나타났다. 우선 생물학이 물리와 화학의 개념과 법칙을 따랐고 뒤이어 의학은 생물학의 개념과 법칙을 따르게 되었다. 19세기에 이르러 의학은 생물학적 개념과 원리로 환원되었다. 생명현상은 물리적 현상 혹은 화학적 현상으로 설명되었고 질병도 물리적 화학적 현상의 변이로 이해되었다.
현대의학은 환원주의를 바탕으로 놀랍게 전진하였다. 미생물을 발견하고 발효의 원리를 밝혀낸 파스퇴르도, 인체의 내부환경이 유지하는 항상성을 물리화학적 법칙으로 밝혀낸 베르나르도, 인체를 이루는 구성단위는 세포이고 생명현상은 일개 세포들의 집합으로 본 피르호도 모두 환원주의를 바탕으로 현대 생명과학과 의학의 기초를 놓았다.
복합적인 생명현상과 질병이 화학 물리적 법칙에 입각한 기작으로 설명되자 이전에 이해되지 못하던 것들이 쉽게 이해되었다. 면역현상, 소화작용이나 내분비 기능이 밝혀졌다. 그리고 이를 화학적 혹은 물리적으로 제어함으로써 치료혁명에도 이르게 되었다. 항생제가 출현하여 극적인 효과를 내었고, 관절과 동일한 물리적 운동을 수행하는 인공관절이 만들어져 인체에 삽입되었다. 인체가 보내는 여러 화학적 물리적 신호들이 설명되자 현대의학이 자랑하는 여러 진단기구들이 개발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세기 말엽 의학은 환원주의의 방점을 찍는 거대 프로젝트에 돌입하게 된다. 20세기 중반 인류는 DNA구조를 밝혀내었다. 이에 물리화학적인 환원주의로 무장한 학자들은 묘목의 혈통 등을 연구하던 유전학을 유전자의 기능과 성분을 밝히는 분자유전학으로 전환시켰고, 20세기 하반기를 달구었다. 생물체를 구성하는 분자의 구조와 기능을 유전자 구조와 특성을 바탕으로 화학적으로 체계화하여 설명하는 경향이 우세하여 졌다.
유전자의 분리 조작 까지 가능하여지자, 유기체 전체의 건강과 질병을 유전자 조절로 달성하려는 환원주의적 사고는 마침내 인간유전체지도를 작성하는 계획으로 이어진다. 이 프로젝트는 21세기 초엽 성공적으로 완수되었다. 생명과학자와 의학자들은 핵물리학이 남긴 핵폭탄에 버금가는 폭발력을 가진 엄청난 유산을 넘겨 받았다. 그리고 실험의학은 이에 매달려 진단과 치료에 “획기적인” 발견을 이루었다는 소식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기대대로 인류는 유전자를 대치하거나 교정하면서 건강을 앞당길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전자의 역할로 모든 생명현상을 파악하고 질병에 대처하려는 환원주의적 태도의 문제점은 이전부터 비판을 받았다. “생물학은 운명”이라는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하여 강력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유전자로 전체 유기체의 성질을 추론할 수 없다는 의견도 강하다. 단일 유전자에 대한 것을 모두 이해한다 하여도 정상적 병리적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소들과의 관련 속에서 유전자의 기능을 알아내기는 어렵다. 그리고 유전자 조정으로 만성병 치료에 다가갈 수 없다는 부정적 견해도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 시점, 의학은 분자유전학으로 환원되어 질병정복이라는 대 명제를 달성할 것인 양 승부를 벌이고 있다. 그리고 한 편에서는 이를 회의하는 시각이 강력히 자라나고 있다.
의학은 희망과 우려가 혼재하는 전환기에 들어섰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