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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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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이방인’을 읽다 보면, 인상적인 에피소드 하나를 만나게 된다. 2부 2장에 나오는 ‘체코슬로바키아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는 십여 년 전 내가 처음 프라하에 갈 때, 염두에 두었을 정도로 오랫동안 뇌리에 박혀 있었다. 그리고 프라하에 다녀온 다음에는 ‘우회, 불멸을 향하여’라는 동유럽 예술묘지 기행글 속에서 다루기도 했다. ‘이방인’에서의 체코슬로바키아 이야기는 우연히 이웃 친구의 보복 사건에 휘말려 태양이 내리쬐는 바닷가에서 아랍인 청년을 총으로 쏜 주인공 사내 뫼르소가 재판을 기다리며 감방에서 보내던 중 침대 밑에서 발견한 옛 신문의 잡보 기사 내용이다. 한 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분량인데, 기쁘게 꾸민 ‘장난’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불러온 기막힌 사연을 담고 있다.
체코의 어느 마을에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돈벌이를 위해 타지로 떠났다가 25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어머니는 동네에서 누이와 여관을 운영하고 있다. 떠났을 때에는 가난한 청년이었는데, 중년의 그는 돈을 많이 벌어 부자이고, 결혼해서 아내와 아이가 있다. 그리운 어머니와 누이를 만나러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고향 집으로 가다가 그는 자신의 오랜 부재를 보상할 만한 뭔가 놀라운 상봉 방법을 생각한다. 깜짝 선물을 안겨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기쁜 마음으로 유쾌한 장난을 꾸미는데, 아내와 아이를 다른 여관에 머물게 하고, 혼자 어머니와 누이 앞에 나타난다. 장난을 통해 극적인 상봉의 순간을 지연시켜서 행복의 충격을 배가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날 어머니는 눈앞에 나타난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아들은 장난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서 가지고 있는 돈을 모녀에게 보여준다. 깊은 밤 오직 손님의 돈에 눈독을 들인 모녀는 그를 죽여 돈을 훔치고 시체를 강물에 던져버린다. 날이 밝자 그의 아내가 찾아오고, 진실은 밝혀진다. 어미는 목을 매고, 누이는 우물 속에 투신한다.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어려서 떠난 아들이 중년이 되어 돌아왔다. 그는 깜짝 충격의 행복을 준비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곧바로 어머니!, 하고 불러야 했을까. 저예요!, 하고 밝혀야 했을까. 25년 간 만나지 못한다면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수도 있는 것일까.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채 무덤 같은 고독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줄 돈이 필요했던 어미와 누이의 시야가 흐려졌다 해도 그 정도일까. 이런 식의 질문은 ‘이방인’ 뫼르소가 늘 중얼거리는 것처럼 ‘아무 의미가 없다.’
카뮈는 ‘이방인’(1942)에 체코슬로바키아 이야기를 액자처럼 끼워 놓고, 뫼르소에게 천 번도 넘게 읽도록 한 끝에 ‘그것은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 또 한편으로는 ‘그럴 법도 한 이야기’로 결론짓는다. 그리고 이 어머니와 아들의 슬픈 이야기를 소설에서 독립시켜 ‘오해’(1943)라는 희곡 작품으로 발표하면서 ‘현대의 줄거리 속에다 숙명이라는 고대의 테마들을 새로이 옮겨보려고 시도한다.’(‘오해’, 서문) 그리스 비극의 영원한 주제는 숙명 앞의 인간, 곧 운명의 장난으로 훼손된 명예를 복원하기 위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다. 여기에서 장난이란 ‘죄’와 동의어이다. 아들의 편에서 보면,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 동시에 자신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것, 그리하여 상대 또는 세상이 잘못 받아들이고 판단하게 한 것이다. 어미와 누이 편에서 보면, 가난과 고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손님들의 목숨과 돈을 훔쳐온 것, 급기야 아들도 오빠도 알아보지 못한 것. 이 모든 것은 ‘때’라는 시간의 법칙과 양심이라는 정직과 정의, 양식이라는 윤리의 문제를 바탕에 깔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청년 시절 여행을 떠났던 프라하에서도, 조국 프랑스에서도 극심한 고독과 유배의 감정을 느꼈던 카뮈가 죽을 때까지 첨예하게 대면했던 주제이다.
체코슬로바키아 이야기를 품고 있는 ‘이방인’과 ‘오해’를 비롯 카뮈의 글을 읽을 때면, 태양, 바다, 꽃, 돌, 물, 모래(사막), 소금 등에 대한 묘사를 눈여겨보곤 한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주목하는 것이 어머니의 존재이다. 카뮈가 작품을 통해 구현했던 소설미학이나 철학은 태양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듯이 어머니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의미에서, 체코슬로바키아 이야기는 카뮈가 평생 애틋한 사랑과 연민, 부채 의식을 지고 살았던 어머니를 향한 원죄의 고백과 구원의 문제를 되새겨보게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