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jpg) | 함정임
한국어문학과 교수 |
제주도에는 10년 만이었다. 공항으로 향하면서 보고 싶은 한 사람을 생각했다. 부산에 내려가 만난 인연이었다. 소설 쓰는 선생과 제자로 대학원에서 몇 년을 동고동락했는데, 졸업 후 서울로 올라가 편집자가 되었다. 성은 장이고 이름은 미였다. 그러나 누구도 성과 이름을 따로 떼지 않고, 장미라고 불렀다. 장미는 꽃이 품은 매혹적인 향과 고귀한 화려함보다는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들꽃처럼 싱그러움과 소박함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장미를 만나고 나면 그동안 알았던 도도한 꽃 장미는 잊어버리고 주변을 환하게 해주는 기분 좋은 표정을 기억했다.
제주로 향하는 비행시간 동안 장미가 그동안 내게 보낸 편지들을 떠올렸다. 홍대 앞에 등을 대고 누울 방을 구했다는 편지, 첫 기획을 맡았다는 편지, 첫 책을 만들었다는 편지, 결혼식을 올렸다는 편지, 그리고 제주도로 이사를 했다는 편지. 사람 사이 정(情)이란 무서운 것이었다. 편지를 읽고 답장을 쓰는 사이, 서울에서는 체험하지 못했던 뭉클함이 밀려와 가슴속을 뜨겁게 채우곤 했다. 나에게 부산은 외지였는데, 내가 떠나온 홍대 앞은 장미에게 외지였다. 살다 보면, 서로 자리를 바꿔 있기도 하고, 측은해하거나 부러워했던 다른 이의 역할을 내가 맡아 하는 일이 벌어졌다.
장미는 내가 1년간 타국에 머물던 재작년 가을 8년 사귄 한옥 목수와 결혼을 했다. 결혼 소식과 함께 몇 장의 사진을 보내왔는데, 나는 편지를 읽으며 대견함, 기쁨, 사랑, 감동 따위의 추상적인 말로는 전할 수 없는 다채로운 감정에 휩싸였다. 장미와 한옥 목수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몇몇 꿈을 꾸더라도 결국 실행에는 옮기지 못하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결혼식을 올렸다. 이름하여, 둘만의 들꽃 결혼식. 소설이나 영화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울리는 것은 작가의 기법이나 감독의 연출법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여운을 느끼고, 돌아보고 싶게 만드는 것은 작품에 쏟은 작가의 진심이다. 장미의 결혼 편지는 내게 감동 이상의 행복감을 안겨주었다. 좋은 것은 두루 나누는 것이 미덕이다. 편지 일부를 그대로 옮겨본다. “웨딩 사진은 빌린 카메라에 삼각대를 꽂아 한강에서 둘이 찍었고, 가을이었고, 하늘이 푸르렀고, 코스모스가 피었고, 등산 가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예쁘다, 잘한다, 잘 살아라 해주었습니다.”
장미의 마지막 편지는 제주도에서 온 것이었다. 허름한 농가를 손수 다듬어 신접살림을 차렸고, 텃밭에 양배추를 심었으나 망했고, 제 얼굴보다 큰 문어를 잡았다는 것.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 서울에서 하던 일을 하고, 밤에는 소설을 쓴다는 것. 온통 벌레에 뜯긴 양배추와 갓 잡은 문어를 비바리처럼 번쩍 들고 활짝 웃으며 찍은 장미의 사진들을 떠올리면서 소리 내어 웃었다. 비행기가 제주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하강하고 있었다. 새색시 장미를 만날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