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jpg) | 함정임
한국어문학과 교수 |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면, 그곳 자연의 질료가 삶과 예술로 표출된 현장을 찾아가곤 한다. 파리 근교 지베르니의 모네의 집, 프랑크푸르트 마임강 근처의 괴테의 집, 쿠바 아바나 코히마르 바닷가 마을의 헤밍웨이의 집, 멕시코시티 코요아칸의 프리다 칼로의 집, 원주 치악산 기슭의 박경리의 집 등이 그들이다.
작품을 감상하듯 집의 위치, 들고나는 출입문의 구조와 인상, 지붕과 창의 형태와 크기, 빛과 그늘의 흐름 등을 음미하는데, 이들 중 내가 특별히 주목하는 곳은 부엌이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지베르니 집은 연작 ‘수련 연못’의 현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원작의 감흥을 연장하고 싶은 감상자들은 그림 속의 실제 연못과 못 위에 떠 있는 수련, 휘늘어진 버드나무의 실루엣을 그대로 느끼기 위해 지베르니로 달려가기도 한다.
이 집은 모네가 열차를 타거나, 센강에서 조각배를 타고 교외로 나가 온 종일 빛의 흐름을 화폭에 담고 돌아오다가 아예 거처를 옮겨 살았던 곳이다. 처음 지베르니 모네의 집에 갔을 때, 나는 당연히 수련 연못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예술이란 삶을 떼어놓고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터득해가면서, 그리고 무엇보다 나만의 부엌을 가지고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나가면서,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처럼 요리도구들이 청색 타일벽을 장식하고 있는 부엌과 지상낙원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드넓은 화초 정원과 채소밭이 그것이다.
한 작가의 작품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방식은 다양하다. 작가들의 음식에 대한 생각과 취향, 식탐, 식사 습관 등을 통해 작품의 고유한 기법이나 미학,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모네는 섬세한 미각을 가진 미식가이자 대식가였다. 채소밭을 따로 세심하게 관리해서 매일 향기로운 허브와 싱싱한 야채를 식탁에 올려주었고, 자기만의 비법으로 요리를 만들어 손님들 미각을 황홀하게 자극했다(<모네의 그림 같은 식탁>, 아트북스).
멕시코의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는 사지가 으스러지는 교통사고의 비운과 과도한 성적 에너지로 끊임없이 추문을 일으켜 고통을 주었던 벽화가 남편 디에고 리베라와의 극적인 삶 속에서도 요리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코요아칸의 2층짜리 파란 집을 방문했을 때,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틀리에와 연결되어 있는 칼로의 부엌이었다. 그녀는 멕시코 전통요리를 적극 활용해 당대의 세계적인 예술가와 정치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내가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서재와 부엌이다. 모네나 칼로뿐 아니라 한국의 소설가들 중에는 수준급의 요리 애호가들이 많다. 언어에 대한 감각과 사랑은 식재료로 전이되고, 요리는 작품을 완성할 때의 희열을 던져준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들에게 서재와 부엌은 다른 공간이 아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