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향신문/함정임의 세상풍경] 유월을 떠나보내며 - 함정임 한국어문학과 교수 2015-06-25 오후 4: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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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함정임의 세상풍경] 유월을 떠나보내며
- 함정임 한국어문학과 교수

 

 
   
 

함정임
한국어문학과 교수

  일주일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1학기를 마쳤고, 남해와 경주를 다녀왔고, 메르스와 글쓰기에 대해 고통스럽게 돌아보았고, 그리고 엄마를 생각했다. 남해에 간 것은 문학과는 가장 먼 분야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기 위해서였다. 

  문학을 지속적으로 읽어오지 않은 분들 앞에 서거나 그들을 대상으로 글을 쓸 때 내게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것을 사명감으로 느끼기도 한다. 대중 앞에 설 때 나는 문학과 등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을 지속적으로 읽어온 독자들과 만날 때보다 더 많은 에너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전혀 다른 분야에서 살아온 분들과 나는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풀어내는 것이 다르다. 외국어로 떠듬떠듬 소통하는 것과 유사한 기분일 때도 있고, 맨땅에서 헤엄치듯 곤혹스러운 경우도 있다.


  남해에서의 특강은 채 50분이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다. 프롤로그에 불과했다. 대상은 삼십대 중반에서 육십대 중반에 이르는 공학 전문가들이었고, 남성분들이었다. 책상 위에 밀린 일들이 산적해 있기에, 특강을 마치고 밤의 남해고속도로를 쏜살같이 달려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으나, 그곳에 남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그분들과 금산에 올랐다. 보리암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평소 하지 않던 짓을 했다. 마이크를 들고 시 한 편을 낭독한 것이었다. 이성복의 ‘남해 금산’이었다. 일행 중 이성복 시인의 존재를 아는 이는 없는 듯했다..

  당연히 남해 금산에 오르면서도 ‘남해 금산’이라는 시 또한 처음 들어보는 듯했다. 나는, 시인과 시의 사연을 짧게 언급하고, 낭독했다. 시는 짧았고, 일행은 버스에서 내렸다. 보리암까지 그들 틈에 끼어 걸어 올라갔다. 뜰 오른쪽, 해수관음보살상과 삼층석탑 앞 난간에서 말없이 건너편 우뚝 솟은 바위를 바라보았다. 옛날 한 여인을 가슴에 품었으나 사랑을 이루지 못하여 돌 위에서 뛰어내렸다던 한 남자의 순정을 생각했다. 시에서는 여자를 따라 돌 속으로 들어간 사내였다. 여기저기에서 상사바위를 묻는 일행들의 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남해에서 돌아오자마자 언니로부터 급히 연락을 받고, 경주로 달려갔다. 언니는 계단을 헛짚어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팔목의 뼈들이 부러져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해 있었다. 메르스 여파로 병원은 썰렁했다. 언니의 보호자가 되어 이틀을 꼬박 병실에서 보냈다. 졸지에 환자복을 입고 있는 언니도, 마스크를 쓰고 있는 나도 낯설었다. 언니를 수술실로 들여보내고 대기하는 동안 만감이 교차했다. 여러 역할 속에 살아왔지만, 나는 유독 보호자 역할에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

  수술을 마치고 실려 나오는 언니는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언니의 눈가에 손을 가져가면서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이 세상에 살아계셨을 때나 저세상으로 돌아가신 지금이나 언니는 막내인 내게 엄마 같은 존재였다. 엄마의 기일은 4월, 올해에는 언니와 엄마한테 가지 못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언니가 퇴원하면 제일 먼저 용인으로 달려가리라 마음먹었다. 유월이 끝나가고 있었다.

 

[2015.6.23.(화) 경향신문 / 기사 전문 보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