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0).jpg) | 류영현
의과대학 의학과
해부학교실 교수 |
메르스로 홍역을 앓고 있다. 메르스는 수년 전에야 처음으로 보고된 신종 전염병이다. 메르스 이외에도 지난 수십 년 동안 지구상에는 여러 종류의 새로운 전염병들이 등장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19세기 이래 현대의학의 진전은 전염병 정복으로 이루어졌으며, 지구상 대표적인 전염병의 하나인 천연두의 박멸을 WHO가 선언할 즈음 인류는 전염병을 제어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하였었다. 1969년 미국 공중위생국장 윌리엄 스튜어트는 “전염성 질병은 이제 대부분 끝이 보인다”고 선언하기 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상 징후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20세기 후반 들어 재향군인병, 라임병, 슬로바이러스가 유행하였고, 에이즈 유행이 충격적으로 만연되면서 현대인들에게 전염병은 중요한 문제로 다시금 대두되었다. 이 뿐 아니다 라사열, 에볼라열, 마르부르크병 등 수 많은 전염병들이 세계 곳곳에서 출현하였다. 우리나라의 국지적 유행병으로 여겨졌던 한국형 유행성출혈병의 원인 바이러스인 한타바이러스가 미국에서 출현하자 미국인들은 당황하였다. 뿐만 아니라 인류가 어느 정도 제어하고 있다고 믿었던 여러 미생물들의 변종이 나타나 유행하기도 하였다.
새로운 전염병은 어디로부터 비롯되었을까? 1992년 미국 국립의학연구소는 세밀한 연구 끝에 여섯 가지 주요 원인을 발표하였다.
첫째는 공중보건 체계의 붕괴이다. 전쟁/기근/난민 등으로 위생 수준이 떨어진 가난한 나라에서는 물론이고, 선진국에서도 공중보건에서 소외된 계층에서는 수인성 및 음식매개 전염병들이 확산되었다.
둘째는 경제개발과 토지이용방식의 변화이다. 벌목이 수반되는 개발, 전염매개 곤충의 증식을 유발하는 상하천 개발, 그리고 조림과 교외의 확장을 통한 질병 패턴의 변화 등이 새로운 전염병을 부추긴다.
셋째는 여행과 무역이다. 빈번한 국제간 교류는 새로운 질병에 저항력이 없는 처녀인구집단에 유행병을 옮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20세기 유행한 흑사병은 배를 통하여 아시아로부터 전파되었다. 배의 밑 바닥은 생물교류의 원천이다. 질병도 배를 따라 옮겨간다. 실험동물의 비행기를 통한 운송 역시 질병을 옮기기도 하였다.
넷째는 기술과 산업이다. 새로운 기술은 미생물에게 새로운 서식지를 제공하기도 한다. 냉난방시스템을 통하여 재향군인병이 유행하였고, 의학기술은 병원균을 체내로 불러오기도 한다.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이 때로는 감염의 원인처가 되기도 한다. 치료약제가 감염병을 불러오기도 한다.
다섯째는 인구와 행동의 변화이다. 현대의 인구폭발은 환경파괴, 식량부족 및 빈곤을 필연적으로 잉태하며 이는 전염병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노인 인구의 증가도 전염병 전파에 한 몫하며 도시인구집중 역시 전염병 만연의 원인이다.
여섯째는 미생물의 적응과 변화이다. 미생물은 급격히 증식하고 또 숙주에 적응하면서 진화한다. 수십 년 전 만 하여도 의학자들은 지구 미생물들은 한정된 종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미생물에 대응하던 의학자들은 미생물들이 빠르게 변종을 생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생물은 감염성과 독성과 내성을 변화시키면서 약과 백신에 대처하며 버텨내었다.
위 여섯 가지 요인들은 단독으로, 혹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어 감염병을 부추긴다. 이를 보면 현대의 감염병 재도래는 필연이다.
생물학적 변화가 과거보다는 더 빠르게 돌아간다는 점을 인류가 진작 직시하였다면 전염병에 대하여 지나치게 낙관적인 태도를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과 의학의 진보에 지나친 믿음을 가진 대가로 이제 다시 수세기 전 전염병이 일상인 시대로 회귀하고 말았다.
감염성질병이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는 믿음은 깨어졌고 희생이 잇따르자, 현대 지구인들은 과거 지구인과 별 다름없는 처지에 빠졌다는 두려움을 가진다. 메르스는 현시점의 우리국민들에게서 그런 공포감을 유발하였다.
전염병 재도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점은 무엇일까? 우선 미생물과 관계 짖고 살아가는 것이 정상임을 깨달아야 한다. 새로운 질병은 끊임없이 출현할 것이라고 가정하여야만 한다. 이에 대한 철저한 교육과 대비도 필요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비관적일 필요도 없다. 인간과 미생물이 서로 경주하면서 버텨온 과거를 직시하여 두려움을 떨쳐야 한다. 역사는 인간이 미생물유전자와 창의적으로 대응한 실례들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