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진희 체육학과 교수 |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2002년 6월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었던 월드컵축구대회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시 우리가 그토록 열광했던 것은 우리 땅에서 월드컵이 열린 까닭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국가대표팀이 4강까지 진출했기 때문일 것이다. 월드컵에는 개최국의 16강 진출이라는 불문율이 존재한다. 1930년 우루과이 대회부터 2014년 브라질 대회까지 한 차례만 제외하고 개최국이 모두 16강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축구 변방국인 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이 그랬다. 그렇다면 홈 그라운드의 이점이 존재하는 것일까.
인간의 텃세는 아주 오래전 수렵채취 사회의 일반적인 특성으로, 자기 것을 지키려는 오래된 진화의 산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스포츠과학자들은 인간의 텃세 행동과 홈에서의 경기력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시합을 앞둔 선수들은 적지보다 안방인 홈에서 싸울 때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량이 치솟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말하자면 테스토스테론에 영향 받은 동물의 텃세 행동이 안방에서 싸우는 선수들의 몸에서도 같은 작용을 해 전투력이 상승된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가정은 프로스포츠 경기 결과로 뒷받침된다. 미국 프로야구의 52%, 프로축구의 58%가 홈 경기 승리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지난해 원정 승률은 42%였으나 홈 승률은 48%였다. 프로축구 부산 아이파크는 지난해 K리그 클래식 경기에서 원정 승률은 16%였던데 비해 홈 승률은 두 배인 32%를 기록했다.
미국의 스포츠전문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이에 대해 흥미로운 기사를 내놓았다. 많은 사람은 홈 관중의 열광적인 응원으로 홈팀 선수들이 힘을 얻어 승리한다고 믿지만, 관중의 응원이 홈팀 경기력에 영향을 준다는 증거는 없다는 얘기다. 원정팀은 장거리 여행의 고달픔, 시차 적응, 낮선 환경으로 인해 평소 경기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 있으나 이 또한 사실이라는 그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오히려 좀 더 설득력 있는 것은 경기장에 대한 홈팀의 어드밴티지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홈 경기장 어드밴티지는 무엇인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우리 팀의 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기 전 잔디를 짧게 깎고 그 위에 물을 많이 뿌린 사례가 있다. 물론 우리 팀이 같은 조건의 잔디연습장에서 수개월 동안 연습했음은 자명한 일이다. 1970·80년대 킹스컵이나 메르데카배 축구대회에서 우리보다 한 수 아래인 동남아 국가들에게 고전했던 기억이 있다. 또 해발 고도가 높은 이란의 테헤란 경기장에서 한국팀이 실력 발휘를 제대로 못하는 것을 보면, 익숙한 경기장에서 플레이하는 것이 큰 어드밴티지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또 다른 어드밴티지는 심판 판정이다.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홈팀에 대한 편파판정이다. 심판들은 편파판정에 대해 오해라고 펄쩍 뛰지만 열광적인 홈팀 응원으로 인한 심리적인 압박은 분명히 존재한다.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프로야구에서 홈팀 타자에게 유리한 볼 판정이 상대적으로 많으며 축구에서는 경기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반칙 페널티를 원정팀에게 더 많이 주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편파판정은 고의일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심판들은 홈 관중을 포함한 홈 경기에서의 압박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다시 13년 이맘때로 돌아가 생각하면, 축구장 잔디에 물을 흠뻑 적시도록 하고 '붉은악마'에게 열정적인 응원을 주문해 홈 어드밴티지를 극대화했던 히딩크 감독은 여러 방면에서 세계적인 '팁'을 많이도 전수했던 감독이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