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jpg) | 유영현
의과대학 의예과
해부학교실 교수 |
20세기 후반기에 생명과학에서 획기적인 업적을 이룬 과학자 몇은 그들의 성취에 도취되었는지 생명과학기술의 가능성에 대해 지나치게 오만한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복제양 돌리를 생산한 이안 월마트는, 시도와 오류가 점철된 복제과정을 설명하는 책을 출간하며 「제2의 창조」라는 어마어마한 제목을 붙였다. 이 제목은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수사학적 수준 이상의 신비한 위치로 끌어올리려는 의도였다. DNA 이중나선구조를 밝혀 분자생물학에서 큰 족적을 남긴 왓슨은 자녀를 건강하고 똑똑하게 하기 위하여 유전자를 추가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서스럼 없이 주장하였다.
자신들의 학문적 업적을 디딤돌 삼아, 자신들의 견해를 한치 의심없는 과학적 보편진리로 격상시키는 발언들인데, 이들의 생각은 우수한 인간을 지향하는 우생학적 경향을 부추기고 인간복제를 정당화할 수 있다.
필자는 배아복제를 반대한다. 필자가 강의하는 발생학 교과서는 수정된 이래 배아→태아→출생의 전 과정은 연속됨을 보여준다. 수정란은 이미 완벽한 DNA프로그램을 가진 인간이며 어느 한순간 중단도 없이 출생까지 이른다. 배아복제 찬성자들은 수정 후 일정 시점(약 2주)을 정하여 그 이전에는 배아를 희생하여도 인간의 존엄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어느 한 시점 전후로 인간의 존엄성이 배아에 부여되지 않으므로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이 논쟁을 신념으로 넘길 수는 없다. 배아복제는 매우 복잡한 법적, 철학적, 종교적 논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법학의 영역에서는 수정란과 배아 자체를 법적 권리의 보호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연구허용으로 파생될 부정적 결과를 염두에 두고 배아보호 입법이 추진되지만, 배아자체에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에서 출발하지는 않는다. 법이 일어난 일에 책임을 묻는데 주로 집중하므로 복제기술 자체를 제제하기도 용이하지 않다. 종교적인 견해는 믿음에 의하여 취하여 지므로 상충되는 주장이 접점을 찾기는 어렵다. 결국 배아복제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해결방안은 철학적 윤리적으로 도출될 수 밖에 없다.
과학 문제를 왜 철학적 윤리적으로 성찰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러나 배아복제 문제는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철학적 주제이다. 인류의 현실적 문제로 다가 왔으나 윤리적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점에서는 윤리적 주제이다.
일부 생명과학자들은 생명과학적 잇슈가 철학적 윤리적으로 성찰되는데 대하여 거북해 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과학문제는 과학 내부에서 풀면 되지 않겠느냐고 소박하게 희망한다. 대중들도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기기도 한다. 하지만 현대 과학은 가치 중립적일 수 없다. 배아복제 문제에 해답이 시급히 요구되자 현대 철학자들이 생명공학적 문제에 깊은 성찰을 시작하는 즈음에 독일의 한 철학자는 인간농장을 언급하며 유전자조작을 통한 신인류 창조를 들고 나왔다. 이에 대하여 경악한 철학자들은 강력 반발하였고 이에 반하는 논리를 세워 나갔다. 간단히 다루기 어려운 주제이지만 유전자조작을 통한 인간사육에 반대하는 주요 논리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은 자율적으로 행위하는 인격이므로 존재의 자율은 어느 누구도 침범하면 안된다. 인간개선의 필요불필요를 결정할 주체도 결정기준도 없다. 교육이 사육으로 대체되면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장도 방해를 받는다. 질병치료라는 선한 목적을 내세우더라도 인간의 사물화는 인간을 목표자체가 아닌 수단으로 보는 경향을 나으며, 인간존엄성 파괴에 이른다. 사육자와 피사육자로 구분하는 순간 인간의 평등원칙도 깨어진다. 자율적인 인격들의 상호관계에 기술이 끼어드는 것은 잘못이다. 도덕유전자없으며 도덕은 인간이 배우는 것이다. 인간의 자기 이해는 유전자에 의하여 결정되지 않는다.
이쯤 되면 인간복제 찬성자들이 설 자리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아직도 인간복제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대중매체를 통한 우생학적 이득을 설득하는 무리들이 있다. 일부 대중의 호기심도 여전하다. 열정적으로 몸을 던져 이를 막던 철학자들의 열정도 다소 식었다. 그러나 배아복제줄기세포 열기가 이땅을 휩쓸었던 때를 기억하면 항상 각성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사육X. 교육O”. 이들을 향해 선 필자의 마스크에 쓰인 글귀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