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신문/세상읽기] 유러피안 드림과 절망의 섬 람페두사 - 황기식 (비서실장/국제전문대학원 교수) 2015-04-28 오후 5: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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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세상읽기] 유러피안 드림과 절망의 섬 람페두사
- 황기식 (비서실장/국제전문대학원 교수)

 

 
   
 

황기식
(비서실장/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Vergogna!"

  2013년 10월 이탈리아 남쪽 시칠리아 지중해 부근에서 난민들을 태운 배가 전복됐을 때, 프란치스코 교황이 언급한 이탈리아어다. 난민들은 당시 이탈리아 남부 작은 섬 람페두사를 향하고 있었다. 당시 언론들이 'tragedy' 즉 비극이라 번역해, 국내 언론에서도 '람페두사의 비극'이란 기사가 쏟아졌다. 굳이 이탈리아어로 운을 뗀 이유는 당시 영국 가디언지가 자국 언론에 보낸 일침을 소개하기 위함이다.

  'Vergogna'를 비극으로 번역한 것은 단순한 번역 실수라기보다 의도된 오역이란 주장이다. 'shame' 즉 '수치'라 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이를 비극이라 번역한 데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사건이지만 어쨌든 개인에게 생긴 슬픈 일로 사건을 규정짓는 방관자의 시각이 느껴진다. 수많은 난민이 쫓기듯이 바닷길로 나서는 동안 국제사회는 무엇을 했나 하고 화두를 던진 것일까.

  문제는 2010년 재스민 혁명 당시부터 진행됐다. 재스민 혁명은 독재정치를 몰아내기 위해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변화를 총칭하는 단어로 튀니지의 국화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때부터 이어진 난민행렬은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18일 람페두사로 향하던 난민선이 다시 리비아 해안에서 좌초해 700명가량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짐칸에 들어간 인원, 근근이 공간을 나눠 앉았던 이들이 살기 위해 떠나는 마당에 정원을 걱정할 턱이 없었을 터다. 상선과 구조선이 지척에 있었음에도 구조된 자는 단 28명, 수습된 시신은 24구에 불과했다.

  '람페두사', 자국의 위압적 상황을 피해 유러피안 드림을 꿈꾸며 난민선에 탄 그들에게 희망의 섬이었다. 그 섬은 시칠리아보다 튀니지에 가까워 위태로운 바닷길을 선택한 이들에게는 유럽의 문턱이었다. 아름다운 해변, 주민 5500명 정도의 이탈리아 섬 람페두사는 소위 '아랍의 봄' 이후 국제사회에 이름이 회자하기에 이른다.

  해마다 1만5000명 이상, 섬 주민의 3배 이상의 난민이 람페두사를 향한다. 끔찍한 전복사고가 아니라도 보트피플의 사연은 기구하다. 보기에도 아찔할 만큼 촘촘하게 난민을 태운 배는 예측할 수 없는 파도를 넘어야 한다. 풍랑에 휩쓸리기도 하고, 선체 아래에서 숨죽인 채 원하던 유럽 땅에 닿기만 하면 성공이라 생각했을 테지만 고난의 2막이 시작된다. 겨우 300명 정도 난민수용시설을 갖춘 람페두사는 이미 포화상태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정부군과 반군 간 지독한 전쟁을 피하고자 바다에 나섰을 것이고, 어떤 이는 미래를 위해, 어떤 이는 가혹한 형벌 집행, 정치범 탄압을 피해 필사의 탈출을 감행했을 것이다. 폐선 직전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 난파되면 근처에 있던 어선, 구조선들이 다급히 도와줄 것 같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2012년 이탈리아에서 제정된 보씨-피니협약으로 난민을 구조할 수 없으며, 이를 무시하고 구조에 참여한 어부가 실정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된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주었다.

  천신만고 끝에 유럽 땅에 도착한 이들은 어떠할까? 유럽연합(EU) 조약에 따르면 난민들은 최초로 도착한 국가 이외 유럽 회원국으로 이동할 수 없다. 공동체가 함께 떠안아야 할 난민 문제를 유럽 주요국들이 외면했다. 오늘날 아프리카의 어두운 현실에 역사적으로 관련된 영국 프랑스 벨기에 독일 등 주요국들은 단지 물리적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방관자가 되었다.

  최근 국제사회가 이민자 급증, 다문화 사회 진행에 따른 문제로 갑론을박하고 있어, 일개 국가가 저 많은 난민을 어떻게 해결하겠느냐고 반문하며 남의 국경 난민 문제에 더 차가운 시선을 던진다. 하지만 경제적 이유로 이동하는 이민 문제와 인권 차원에서 논해져야 할 난민 문제는 별개다. 하물며 인권이라는 영역에서 소프트파워를 발휘해 온 유럽은 지중해 난민 사망자 수치에 더 온당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지난 18일 전복사고 이후 개최된 EU 긴급 정상회의 성명에 따르면 5000명 규모를 초과한 난민은 본국으로 송환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탈북자들을 북한으로 송환하는 중국을 비난해 온 EU의 결정이다.

  지역의 주요국들은 역사·사회·문화적으로 연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역내 중심국들은 인권, 환경 등 글로벌 이슈를 선도해야 할 마땅한 책임이 있다. 아프리카 난민에게도 동아시아 내 탈북난민에게도 지역, 나아가 국제사회의 관심과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 이런 소식을 접하고 보니 다시 'Vergogna'의 번역을 바꿔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부끄럽지 아니한가!"

 

[2015.4.27.(월) 국제신문 본지 30면 / 기사 전문 보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