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영수
독어독문학과 교수 |
사람 사이에 부대끼는 갈등과 긴장이 우리를 가장 힘들게 만든다. 사회가 혼란스럽고 경쟁이 치열해 인격과 능력을 터무니없는 잣대로 평가하는 폭력과 모욕이 우리를 지배한다. 퇴직한 필자가 직업적 긴장에서 벗어나 보니 그동안 살아온 나의 삶이 경쟁에 시달리며 살아온 삶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정치독재와 투쟁하며 살아온 세월은 일상의 인간다운 삶을 염두에 둔 투쟁의 역사였다.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자유경쟁 체제를 세워 가다보니 어느덧 모든 것이 경쟁을 통해서만 사회적 질서가 자리매김하는 것으로 모두가 체념하기에 이르렀다.
그럼 경쟁이 공정한가. 학교에서부터 치열한 경쟁은 자라나는 인성을 모조리 거칠게 변형해버렸다. 학교 공부의 과열은 사회생활에서 여러 가지 변이로 전이돼 나타난다. 도로 운전, 직장 승진, 스포츠 등에서 업적 부풀리기, 골프(점수), 좋은 자동차, 고급 아파트, 명품은 물론 소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마침내 여론까지 경쟁으로 조작하고 살다보니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보통 사람의 삶이 처절하게 망가져 버렸다.
과거 사회는 그래도 경쟁보다 협력을 더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였다. 우리가 가진 연대 능력, 협력, 언어의 발명까지 모두 인간의 결속능력을 보여주는 유산인 동시에 증거다. 협력과 신뢰가 조금은 더 안전한 삶을 보장할 수 있다. 공정, 안전, 신뢰, 사랑이야말로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기 위한 필수 요소다.
우리는 오늘날 불신사회에 살고 있다. 간접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사회를 주도하고 파워를 가진 기득권자들이 경쟁을 도발하고 시스템을 만들어 자신의 이익 질서를 위한 경쟁을 지속적으로 부추기다 보니 2중 3중 체크를 도입해도 여전히 불안하기 마찬가지다. ‘갑’은 빼앗기지 않으려는 이분법의 빈곤한 사유에서 상대를 늘 사악한 경쟁자로 생각하고 지배하려고 든다.‘ 을’은 경쟁적 억압에서 해방을 찾다보니 또 다른 설움의 질곡이 삶을 묶어버린다. 공정한 게임은 우리 사회 어디에도 없게 됐다.
경쟁은 아무도 승자로 만들어 주지 않는다. 잠시 승리자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두 패자가 된다. 우리는 모두 패자가 돼버렸다. 우리 사회는 패자로 이뤄진 위험한 사회다. 위에서는 순방을 떠나는 대통령부터 아래로는 구준생(9급 공무원 준비생)에 이르기까지 모두 패자가 돼 울화병 또는 슬픔으로 생의 한풀이에 병적 상태를 여러 가지로 드러낸다.
세월호가 보여주는 국가, 사회의 무능과 부패는 경쟁의 부정적 측면이고 우리의 자화상이다. 승자만을 꿈꾸는 사회는 너무 삭막하고 그 승자가 불러오는 타락은 작금의 새누리당 사태처럼 또 다른 사회적 고통을 불러올 것이다. 그 정치는 최악을 次惡으로 바꾸는 외에는 별로 기대할 것이 없다.
등수 매기는 일은 네가 져야 내가 이긴다는 잘못된 교훈이요, 너무 이른 시기부터 서로를 경쟁자로 인식하니 인간의 이해 능력을 키울 시간도 없다. 이런 풍토에서 인간의 정신이 작동할 자리가 없다. 돈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지적탐험이나 새로운 시도는 위험해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리란 느낌이 있어야 가능하다. 실수는 곧 퇴출이란 분위기에서 경직된 무기력이 경기판을 어지럽힐 뿐이다.
지나친 경쟁과 압박은 결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안전, 공정, 신뢰 속에서만 자유로운 탐색과 나은 삶이 깃들 수 있다. 그래서 말한다. 선생님(권력자, 부모) 스스로가 경쟁 상태 하에 놓여서 학생(부하)을 자유롭게 교육하기는 어렵겠지만 지나친 경쟁을 부추기지 않는 교육철학을 지니고 조용히 실천한다면 우리의 미래 세상은 조금 달라질 것 같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