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jpg) | 유영현
의과대학 의학과
해부학교실 교수 |
그러나 의학을 건강과 질병에 대한 학문으로 좁게 정의한다고 하여도 의학이 진정 자연과학일까? 의학 내부에서는 이에 대하여 오랜 논쟁을 거쳤다. 이는 의학 본질에 대한 논의이고 철학적 논점이다.
의학사가들은 히포크라테스 이래 서양의학은 철학을 주요한 요소로 가졌다고 주장하거나 아예 의학은 철학이었다고 주장한다. 동양의학이 철학이라는 것과 비슷한 설명이다. 서양의학이 과학의 세례를 받아 자연과학적 요소를 가지기 이전 서양의학은 매우 철학적이었다. 질병을 설명하는 이론이 있었고 질병치료술에 대한 학문적 체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몇 세기 이전까지 서양의학은 인간에 대한 철학적 담론을 포함한 학문이었다.
의학이 자연과학인가 인문과학인가 하는 논쟁은 서양의학이 과학혁명 이래 매우 과학적 경향을 띄면서 잉태된 것이다. 서양과학이 전진하던 시기에는 서양과학이 거둔 성과 때문에 의학에서 인문학적 요소는 점차 하찮게 취급을 받았다. 비록 서양의학의 과학적 성과가 뚜렷이 나타난 20세기에도 몇 서양의과대학들은 철학을 교과과정에 포함하고 있었으나 의학에서 인문과학적 요소는 명맥이 끊어져 가는 듯하였다. 하지만 의학에서의 인문학적 요소는 다시 살아났고 최근 서양의학을 배우는 전 세계 의과대학에서는 인문학으로서의 의학에 대한 학습이 대폭 늘어났다.
의학이 자연과학인지 인문과학인지에 대한 잇슈는 한 편 칼럼으로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건강과 질병에 대한 오늘날의 의학 사상에 대한 간단한 고찰이 이 문제에 다가가는 길이 될 수 있다.
지난 수세기 의학은 건강과 질병을 생물학적 개념으로 보았다. 건강의 생물학적 개념은 종디자인으로 그리고 질병은 종디자인으로 부터의 벗어남으로 개념지운 것이다. 사람이라는 종에게 주어진 정상적인 계획 또는 종의 규범에 따라 작용하면 건강한 상태이며 이를 벗어나면 질병이라고 본 것이다. 음식물을 씹어 소화 섭취시키는 기능은 인간에 해당하는 종형 디자인의 일부이며 이런 기능이 위기에 처하면 질병이 되는 것이다. 건강과 질병의 종디자인 개념은 마침 약진하는 자연과학에 의하여 구체화되어 생명현상을 기계론적으로 설명하게 된다. 정상과 질병은 생물학적 개념이며, 사람이 기계론적으로 제대로 작동하면 건강한 것이고 고장나면 질환이 생긴다는 개념이 지배하게 되었다. 기계론적 모델은 매우 생산적이었고 의학은 초고속으로 전진하였다.
하지만 건강과 질병이 생물학적 개념만으로 정의되는데 대한 강한 반론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질병은 단순한 생물학적 실체가 아니다. 생물학적 실체를 넘어서 질병에 걸린 인간이다. 생물학적 결손이 뚜렷한 암과 소화성궤양 같은 질병조차, 증상이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기도 하며 치료술 역시 생물학적 한계를 흔히 넘어선다.
이러하니 의사는 생물학적 질병 이상으로 병든 환자를 돌보아야 하며, 이 과정에서 환자의 통증, 고통, 심리 등 비생물학적 현상을 다루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 현대의학은 자연과학이자 인문과학으로 되돌아 왔다.
융합과 통섭의 시대에 조기에 이과 문과를 결정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되고, 지난 해 우리사회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토론이 열띠게 벌어졌다. 문이과 결정시기도 문제이지만 결정기준도 문제이다. 이과와 문과를 나눌 때 수학·과학과 어학을 흔히 기준으로 삼지만 이 기준이 타당한지 의문이다.
입시철이다. 의학은 분류상 이과계열이고 주로 수학·과학 인재들이 의학 진학을 꿈꾼다. 그러나 의학은 자연과학이자 인문사회과학임을 수험생들이 명심하기를 바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