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매일/오피니언] 울산 대왕암, 역사와 전설의 스토리텔링 - 정은우 석당박물관장 2014-10-16 오전 10:4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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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매일/오피니언] 울산 대왕암, 역사와 전설의 스토리텔링
- 정은우 석당박물관장

 

 



 
 
   
 

정은우
석당박물관장

  며칠전 태양-지구-달 순으로 달이 지구의 본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지는 현상, 개기월식을 볼 수 있었다. 이를 지켜보자니 얼마 전 다녀 온 울산 대왕암과 울기등대 체험관에서 보았던 애니메이션이 생각난다. 현재 이곳에는 4D입체영화관이 있고 울기등대와 대왕암을 소재로 만든 스토리텔링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상영하고 있다. 즉 대왕암 주위 바다위에 떠 있는 세 개의 섬, 즉 민섬(또는 미인섬)과 생김새가 거북과 같다 하여 거북바위,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형상에서 붙여진 할미바위 등을 소재로 선녀민, 근위대장, 서궁장수라는 캐릭터를 설정해 만든 것이다.

  사랑에 빠져 하늘로 가지 못한 선녀 ‘민' 그리고 그 선녀를 사랑하고 이로 인해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내려온 서궁장수를 죽이게 되어 형벌을 받게 된 근위대장과 옥황상제의 명으로 선녀 민을 데려가기 위해 왔다가 근위대장에게 죽게 되는 서궁장수 등 세 사람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바위로 있다가 개기일식에만 다시 인간으로 환생해 만날 수 있는데 울기등대가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설정으로 마치 견우와 직녀를 생각나게 한다. 개기월식이 아닌 몇 십년만에 한 번씩 오는 개기일식에만 인간으로 환생해 만날 수 있는 선녀 민과 근위대장, 그들의 사랑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진다.

  1906년에 세워진 울기등대는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106호이다. 1905년 러일전쟁 당시 급하게 나무로 세워진 것을 지금과 같은 백색의 콘크리트 등탑으로 새롭게 개축하였다. 주변에 해송이 자라 더 이상 길잡이 역할을 하기 어렵게 되자 1987년 12월 촛대모양의 아름다운 등대를 그 옆에 새로 만들고 기존의 등대는 문화재로 보존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입체안경을 쓰고 보는 4D입체영화관을 만들고 선박조종체험관을 설치해 시민들과 어린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등대 앞으로 아름다운 절경이 쭉 뻗어지고 그 앞에 늘어진 큰 바위들에 울산 대왕암이 자리잡고 있다. 경주 대왕암과 달리 1995년 현대중공업에서 기증한 대왕교가 그 앞 까지 연결되어 바다와 대왕암이 눈 앞에 그대로 펼쳐진다. 아름다운 해송과 바위, 바다가 어우러져 그야말로 절경 중의 절경이다. 대왕암의 설명문에는 신라의 문무왕비가 죽어서도 호국룡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이 곳에 묻혔다는 전설이 있다고 쓰여 있다.

  문무왕비는 삼국유사 ‘왕력(王曆)' 편에 의하면 선품(善品) 해간(海干)의 딸 자의(慈義)로 자눌왕후(慈訥王后)라고도 한다. 자의왕후는 그 이름에 나타나 있듯 아름다운 용모에 자애롭고 위엄있는 왕비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자의왕후에 대한 이야기로 확실하지는 않지만 문무왕이 돌아가신 후 얼마 뒤 죽었다거나, 자의왕후의 아들 즉 신문왕(神文王, 재위 681~692)의 장인인 김흠돌이 왕후를 흠모했으나 혼인하지 못하자 계속 왕후를 괴롭혔다는 이야기 등이 전한다. 김흠돌은 신문왕 때 반란을 일으켜 죽음을 당하는 사람으로 좋은 인성을 가진 인물은 아니었지만 문무왕의 어머니이자 김유신의 누이 즉 무열왕 김춘추의 부인이었던 문명왕후 김씨(문희, 훈제부인)와는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흔히 대왕암이라 하면 경주 대왕암, 즉 문무왕(文武王, 재위 661~681)의 수중릉을 떠올리게 된다. 문무왕이 돌아가신 후 바다의 용이 되었는데 화장한 유골을 묻은 곳이 사적 제158호로 지정된 대왕릉이며, 682년 건립된 감은사 금당 계단 아래 동쪽에 구멍을 내어 용이 드나들게 하였다는 ‘삼국유사'의 유명한 이야기가 전한다. 이와 비교해 보면 울산 대왕암은 그 명칭에서부터 경주 대왕암을 베낀 것 같은 뉘앙스가 짙다고 할 수 있다. 문무왕비의 무덤이라는 전설도 20세기 들어와서 부터이며 정확하게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80년부터 라고 하니 더욱 그렇다. 여기에 대왕암과 감은사와의 관계에서 대왕암 앞에 사찰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문무왕비의 수증릉은 절대 될 수 없다는 시각도 있고, 전설은 단지 전설로 봐야 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전설이 후대에 만들어졌든 아니든 시민들의 믿음과 사랑을 얻게 되면 전설은 사실이 된다. 반대로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면 전설의 가치는 사라지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문화재를 대상으로 한 콘텐츠 개발과 활용이 대세다. 가는 곳 마다 한 폭의 그림, 문학, 경치, 건물 더 나아가 음식, 기술 등을 스토리텔링화해 일반인들에게 쉽게 전달하고 재창조해 우리에게 새로운 재미를 준다. 이 작업은 문화재청에서 시행하는 생생문화재와 같이 국가에서 주관하거나 각 시도 단체에서 하기도 하지만 광주 문화관광탐험대처럼 시민들이 주관하는 경우도 있다. 즉 직업을 가진 시민들이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스스로 자원봉사자가 되어 콘텐츠를 개발하는 자발적인 모임인 것이다. 반드시 사서에 등장하고 증명되는 것만이 역사는 아닐 것이다. 대왕교 위에서 내려다 보는 울산 대왕암은 자연이 만들어 낸 경치에 파도 소리가 어우러져 장엄하기까지 하다. 여기에 중간 중간 떠 있는 암석, 빽빽하게 들어 선 해송에 하얀 백색의 등대가 만들어 낸 아름다움은 현실이 아닌 미지의 세계에 온 듯 신비로움이 느껴진다. 울산 대왕암, 앞으로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스토리텔링화 작업이 더해지고 시민들에 사랑받는 보편적인 가치로 재탄생하게 되는 그 날을 기다려 본다.

 [2014.10.15.(수) 울산매일 14면 / 기사 전문 보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