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석 국제전문대학원장

  지난 세기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무수히 많았다. 국민의 직접 참여가 민주주의의 핵심이지만, 18세기 이후에는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제한된 정부권력을 핵심으로 삼았다. 20세기에는 사회복지가 민주주의라는 주장도 나타났다. 최근에는 옛 소련의 반체제 인사였던 샤란스키가 제시한 대로 민주주의란 누구나 광장에 나와서 정부에 대한 비판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즉, 개인의 '도덕적 분별력'에 근거한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체제가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은 분명 민주주의 국가임에 틀림없다.

  유지 또는 폐지는 선택의 문제일 뿐

   새삼 민주주의를 거론한 이유는 다가오는 6·4 지방선거의 양상이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오랜 논란 끝에 상향식 정당공천을 당론으로 정했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합당해 새로 출범할 신당은 아예 정당공천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 과정을 보면 모두 속내를 숨기고 마치 지방선거의 정당공천은 민주주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정당공천과 민주주의를 직접 연계할 필요는 없다. 주어진 여건에서 정당은 민주주의 정부를 유지하는 고유의 역할에 충실하기만 하면 된다. 예컨대 민주주의의 모범이라는 영국에서는 중앙당 통제하의 공천을 당연시하고 있다. 또 한국 정치의 기본 틀을 제공하고 있는 미국은 거의 예외 없이 예비선거를 통한 정당공천을 하고 있다. 지방정부 구성에서도 한 명의 시장을 뽑기도 하고 5명 정도를 뽑아 돌아가면서 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지방의회도 없이 몇 명의 관리인을 선출하는 것으로 의회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물론 주민들이 직접 선출한 지역인사가 그 지역에 가장 알맞은 일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의 결과나 과정을 보면 정당공천 제도가 좋지 않다는 결론에도 흔히 도달할 수 있다. 기초의원들은 지역의 이익을 위한 정책제안과 견제보다는 공천을 얻기 위해 마치 국회의원의 손발처럼 행동하게 된다. 몇몇 지방정부는 단체장의 부패행위, 과시성 지역 이벤트 치중, 엄청난 예산낭비 등으로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더구나 1991년 지방자치제가 재개된 이후 정당공천에 대해서 여당과 야당이 바꾸어가면서 유지 혹은 폐지를 주장한 것을 보면 이것이 다분히 정략적인 절차임도 알 수 있다. 과거 기초의원은 배제됐던 정당공천이 2006년부터는 허용되지만,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는 여야 모두 이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면서 마치 민주주의의 기준으로도 비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핵심은 정당공천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선거라는 전체 게임의 규칙이 공정한가에 달려 있다. 현재 야당에서는 공천이라는 절차 자체를 포기하려고 하지만, 공천이 공정하게 진행되고 경쟁력 있는 후보자를 선출할 수만 있다면 좋은 민주주의의 규칙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정당공천은 대다수 유권자들에게 분명한 판단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지방선거 후보자의 정책이나 인품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일 뿐인데, 만약 정당공천이 없다면 어떻게 자신의 신념에 맞는 후보를 뽑을 수 있을 것인가.

   엄정한 심사 거쳐 제도적 시행 바람직

   새누리당이 내세운 상향식 공천 절차도 공정하지 못할 개연성이 높다. 무엇보다 너무 늦게 제시되고 기준이 지역마다 모호하여 예비후보들은 규칙도 모른 채 경선 무대에 내몰리고 있다. 조작이 가능한 여론조사를 포함하고 있고, 특히 당원 50%와 시민참여 50%로 선출하겠다는 것은 결국 지역 국회의원들과 기존 당원들이 주도하는 결과를 가져오겠다는 것과 같다. 결국 무늬만 경선이지 실제로는 여러 단계에서 조작이 가능하고 절차만 복잡하게 할 뿐 의도하던 긍정적 효과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비효율적이고 불공정한 방법보다는 당당하게 정당의 엄정한 심사를 거쳐 정당 이름을 걸고 제도적으로 공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역 지역의원들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고, 유능한 인물을 새롭게 발굴하는 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애초에 유권자들의 불신을 가져오는 광역시의 기초선거 자체를 폐지하고 시의원의 숫자를 조정하는 등 효율성을 담보하는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