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pg) | 황규홍 영어영문학과 교수 |
2014년 1월 1일부터 100년 가까이 사용한 기존의 지번주소 대신에 도로명을 근거로 한 도로명주소가 전면 도입되어 실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주소체계는 전면 시행을 약 1개월 정도 앞둔 지금 상당수의 일반 국민들로부터 홀대를 받고 있어 그 실효성이 의문스러울 정도이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시민이 자신의 도로명주소를 모르거나 심지어는 내년부터 새로운 주소체계가 전면 시행된다는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도로명주소의 안착을 위해서는 정부의 계도 및 홍보와 더불어 이 주소체계의 도입 배경과 과학성을 잘 이해하고 새로운 제도에 대한 수용의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먼저 도로명주소의 도입 배경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명분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일제의 잔재를 없애는 것이다. 기존의 지번주소는 한일합방 이후 일제가 우리로부터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토지를 나누는 과정에서 부여된 번호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또 다른 명분은 지번주소가 급격한 토지개발과 도시화에 발맞추지 못하게 되었고, 그 결과 1번지 옆에 2번지가 있다는 식의 순차성을 상실해 그 효율성이 낮다는 것이다. 반면에 미국 등 선진국에서 사용하는 도로명주소는 도시가 확장되고 개발이 이뤄져도 복잡해지지 않고 효율성이 높다. 이런 장점과 지번주소의 비효율성을 감안하고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도로명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 과거 YS 정권에서 처음으로 도로명주소 사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그 이후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이 사업은 지속돼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이다.
상당수의 일반 국민들은 새로운 주소체계가 우리나라의 실정을 잘 반영하지 못해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도로명주소를 면밀히 살펴보면 체계적이고 합리적이다. 예를 들면 도로를 크기에 따라 ‘대로’, ‘로’, ‘길’로 구분하고 있는데 ‘대로’는 폭이 40m를 넘거나 왕복 8차선 이상의 도로를, ‘로’는 대로보다는 작지만 폭이 12m 이상이거나 왕복 2차선 이상의 도로를 나타낸다. 그리고 ‘길’은 마을에 나 있는 마을길을 모두 말한다. 그래서 주소의 도로명 뒷부분을 보면 해당 건물이 큰 길을 접하고 있는지 아니면 작은 길을 접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건물번호는 건물의 정면과 만나는 도로를 기준으로하고 도로가 시작하는 지점을 기준으로 왼쪽은 홀수, 오른쪽은 짝수를 부여하며, 20m마다 숫자가 2씩 올라가고 북쪽이나 동쪽으로 갈수록 숫자가 커진다. 그리고 20m 구간에 여러 건물이 있는 경우는 두 번째 건물부터 가지번호를 붙이는데 예를 들면 3번 구간에 3개의 건물이 있다면 첫 번째 건물은 3, 두 번째 건물은 3-1, 세 번째 건물은 3-2로 표기한다. 도로명주소는 건물의 위치와 더불어 거리까지 정보를 재공하고 있는데 세종대로 110에 위치한 서울시청의 경우 세종대로 시작점에서 1,100m 떨어진 구간에 위치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또한 건물의 용도에 따라 다른 모양의 팻말을 사용하고 있고, 도로명 팻말에도 다양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어 기본 원리만 이해하면 더 편리하고 효율적이다.
그러나 도로명주소는 대부분의 도시가 계획적으로 형성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실정에 부합하지 않은 면도 있고, 기존의 지명이나 지번주소에 녹아있는 그 지역의 역사 및 문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특히 도로가 쭉 벋지 않은 조그마한 마을길에 위치한 건물들은 도로명주소의 체계를 잘 이해하고 있어도 찾기는 쉽지 않으며 인위적으로 붙여진 도로명은 시민들이 단시간에 숙지하지 못해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17년 전부터 시작된 도로명주소 도입 사업에 지금까지 수천억 원의 예산과 많은 노동력이 투입되었다. 게다가 전면 시행을 코앞에 둔 현시점에서 도로명주소의 전면 폐기나 유보는 또 다른 유형의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대대적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새 주소체계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공익광고나 이벤트 등을 통해 도로명주소의 저변확대에 안간힘을 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건, 사고, 화재 시 경찰, 소방대원, 구급대원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즉시 현장에 출동할 수 있도록 이들을 상대로 사전에 도로명주소를 철저히 숙지시켜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시켜야한다.
또한 국민들도 새로운 주소체계의 단점에만 사로잡히지 말고 장점 및 취지를 인지할 필요가 있으며 익숙함 때문에 새로운 것에 대해 거부하는 자세를 지양해야할 것이다. 과거 초기에 혼란이 있었던 의약분업 제도가 지금 잘 시행되고 있고 또 우측통행 제도도 시행 초기에 비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도로명주소의 시행도 정부의 노력과 국민들의 긍정적 인식전환이 담보된다면 연착륙할 것이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