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홍 영어영문학과 교수

  우리나라는 1950년 한국전쟁 이후 거의 반세기 만에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루어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나라로 전 세계에 잘 알려져 있다. 지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경제력은 세계 12위로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엔 사무총장과 세계은행 총재를 배출한 자랑스러운 나라이기도 하다. 이처럼 경제 및 인권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현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우리들의 시민의식 수준은 어디까지 와 있는가? 상당수의 사람들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우리나라의 격에 걸맞지 않은 수준이라고 답할 것이다.

  길을 가다보면 주차금지 표지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질서하게 주차되어 있는 차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게다가 장애인용 주차구역에 버젓이 일반인이 주차하는 모습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이런 광경을 볼 때마다 선진국, 경제 강대국이란 대한민국의 지위가 무색해지는 것 같다. 이러한 부끄러운 주차문화는 소형차 운전자부터 고급 외제차 운전자에 이르기까지 만연되어있다. 진정한 선진국에서는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에서는 행해지고 있는 셈이다. 물론 위와 같은 불법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정부에서 계도도하고 단속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상시적인 것이 아니라 일시적이거나 이벤트성이 강해서 계도나 단속의 실효성은 극히 제한적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질서유지를 위해 강력한 공권력을 항시 행사하는 싱가포르나 미국 등과 같은 나라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자동차 문화이외에 우리 국민들의 무책임한 생활습관이다. 생활쓰레기의 종량제 실시 이후 일부에서는 쓰레기의 양이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보도도 접한다. 적지 않은 수의 시민이 쓰레기를 공공장소, 길거리, 남의 집 앞에 몰래 버리거나 산속에 투척하는 것을 쉽게 목격한다. 요즘 일부 지역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도 종량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주로 사회지도층이 살고 있는 고급 아파트에서도 무단 투기는 아니지만 이러한 무책임한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 이번 추석 연휴 때 유명 호텔에 버금가는 아파트의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품 수거장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 진상을 쉽게 인지할 수 있다. 수거장에 이리저리 흩어져있는 비닐봉지에 쌓인 음식물과 분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내동댕이쳐진 각종 재활용품들로 넘쳐나는 아파트를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이러한 장면은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 사회지도층의 생활습관과 의식수준을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들의 품격과 생활수준에 알맞은 생활습관을 가져야할 것이며, 나아가 우리나라의 격에 걸맞도록 현재의 시민의식을 고취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공공시설물 이용이나 자원 사용에 있어서도 많은 반성과 개선의 노력이 시급하다. 백화점, 공항, 역, 정류소나 음식점 등과 같이 대중들이 많이 이용하는 장소에서 화장실을 가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예전과 달리 이제 이러한 장소에도 화장지 등을 비치하고 있는데 필요이상으로 화장지를 사용한 흔적을 빈번히 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물도 과다하게 사용하는 모습과 재활용품의 분리수거 등도 거의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기 때문이다. 만일 자신이 화장지나 물 사용료 등을 직접 부담해야 한다면 지금처럼 낭비를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배움터인 학교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냉·난방기기와 전등이 켜진 빈 강의실, 화장지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고 수도꼭지가 꼭 잠겨져있지 않은 화장실, 알루미늄 캔, 빈병, 일회용 용기, 쓰레기 등이 뒤섞여져있는 모습은 아쉽게도 우리가 학교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무엇보다 공공시설물에 대한 주인의식의 부족 때문이다. 진정한 선진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공공의 것도 자신의 것처럼 여기고 아끼는 자세를 가져야할 것이다.

  최근에 우리나라 발전의 잣대가 되고 있는 OECD 통계가 홍수 같이 쏟아지고 있다. 이 통계가 나올 때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자긍심을 가질 때도 있고 부끄러움을 느낄 때도 있다. 만일 회원국의 시민의식 수준이 하나의 지표가 된다면 우리는 또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급속한 경제성장에 비해 시민의식은 그만큼 성숙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선진시민의식은 우리 개개인의 작은 실천에서 비롯됨을 고려하면 우리 모두는 앞서 언급한 자동차 문화와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공공시설물 이용과 자원의 사용에 있어도 주인의식을 갖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매표소, 승강장 및 정류소 등에서의 줄서기, 그리고 승강기, 버스, 열차 안에서 정숙하고 양보하기 등과 같은 기초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또한 정부도 이런 선진문화 정착을 위해 지금보다 더 체계적으로 계도와 단속을 강화하고, 학교와 가정에서도 남을 배려하는 자세를 학생과 자녀에게 심어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