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승효상 건축학과 석좌교수. (2) 지난 5일 부민캠퍼스 김관음행홀에서 열린 승효상 건축학과 석좌교수 네 번째 토크콘서트 ‘기억’ 모습. <사진 = 동아대 홍보팀 신부삼>
지난 5일 부민캠퍼스 김관음행홀에서 학생 및 일반인 300여 명 모여 ‘성황’ 승효상 건축학과 석좌교수, “건축의 존재 이유는 기억을 만들기 위한 것”
“건축은 ‘기억의 장치’입니다. 건축 설계는 미래의 일이 아니라 현재 우리 삶에 개입해 변화시키는 ‘청사진을 그리는 역할’을 합니다” 승효상 동아대 건축학과 석좌교수는 나긋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강연을 듣기 위해 모인 청중 300여 명에게 건축의 정의를 이렇게 밝혔다.
동아대학교(총장 한석정)는 승 교수의 네 번째 토크콘서트를 지난 5일 오후 3시 부민캠퍼스 김관음행홀에서 개최했다.
건축의 존재 이유를 ‘기억을 만들기 위해’라고 밝힌 승 교수는 “오늘날 건축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해 과거를 백지화한다”며 ‘팔림프세스트(Palimpsest)’ 개념을 인용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덧붙인 양피지’를 일컫는 팔림프세스트는 이미 글이 쓰여 있는 양피지 위에 다른 글을 덧씌운다는 뜻으로 글 위에 다른 글을 덧대는 과정에서 이전 글의 영향을 받게 되고 글과 글이 겹쳐지는 과정에서 풍부한 의미가 발생한다.
승 교수는 한국 전통 건축은 ‘터 무늬’에서 찾을 수 있다며 ‘터 무늬 있는 삶’을 강조했다. 그는 “현대 한국 건축은 서양 건축법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며 “독일 철학자 ‘게오르그 루카치’는 ‘미래는 과거 업적을 흡수시킨 펜의 결과’라고 했는데 이를 새겨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시간에 강동연(건축학과 1) 학생이 “인천 송도신도시처럼 과거 기억이 없는 곳을 건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며 문화가 다른 새로운 도시를 개발할 때 건축가는 어떤 계획을 세워야 주민들에게 좋은 기억을 줄 수 있는가”라고 묻자 승 교수는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를 소개하며 “지형이 있는 도시는 자연이 만든 기억이 있다. 사람 흔적이 없는 도시를 만들 땐 자연이 만든 기억을 보존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대답했다.
문준희(건축학과 4) 학생은 “우리나라 건축과 다른 나라와의 차이점은 변화와 발전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도시와 건축의 고유한 정체성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건축가는 건축의 제 기능을 통해 도시의 기억을 어떻게 보존해야 하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승 교수는 이탈리아 소설가 이타르오 칼비노의 저서 ‘인비저블 시리즈’를 언급, “도시는 움직이는 생명체와 같아서 완성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때로는 퇴보하기도 한다”며 “오늘날 도시는 이익을 위한 사회적 결사체로 변해 ‘팽창’이 목표인 ‘메트로폴리스’가 되고 있는데 ‘인적 네트워킹’이 중요시되는 ‘메타폴리스’를 지향해야 한다”고 답했다.
승 교수는 강연 마지막에 “도시라고 하는 것은 성격과 형태, 내용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고 같은 도시는 하나도 없다. 모든 도시가 저마다 고유성을 가지고 있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 변한다”며 “도시가 변화하지 않으면 종말 한다”고 운을 뗀 뒤 “역사적 기억 없이는 아름다움도 존재할 수 없다”며 “기억은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바탕”이라고 말하며 강연을 끝맺었다.
